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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속도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이 있다. 도대체 세월이 얼마나 빨리 느껴졌으면 시위를 떠난 화살만큼 빠르다는 것일까? 화살의 속도는 대체로 시속 240km쯤 된다고 한다. 인간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면 엄청 빠른 속력이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을 1년이라고 정했다. 그렇게 지구가 도는 속도를 계산해 보니 지구는 태양 주위를 시속 107,000km로 돌아야 1년에 한 바퀴를 완주할 수 있다. 총알보다 30배나 빠른 속도라고 한다. 게다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스스로 자전을 하는데 자전 속도도 만만치 않다. 적도 부근의 자전 속도는 시속 1,700km나 된다. 그래서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러운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지구에 딱 붙어서 살고 있다.     우리가 그런 속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마치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속도를 못 느끼는 것과 같다. 자동차 속의 모든 것은 자동차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걸음은 시속 약 5km 정도 된다고 하며 뛴다면 시속 30km 정도다.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소문난 치타는 시속 80km까지 낼 수 있다. 그것이 동물의 한계다.     그런데 소리는 공기 중에서 시속 1,234km나 된다. 그래서 빠른 비행기의 속력을 표시할 때 얼른 이해하기 쉽도록 음속을 기준으로 한다. 소리의 속도를 마하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전투기가 마하 2의 속력을 낸다거나 유도탄이 마하 3의 속력으로 난다고 말한다. 지구상에서는 비교적 빠르다는 것도 소리의 속도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게 간단히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다르다. 태양 표면을 떠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약 8분 걸린다. 빛은 1초에 지구를 7번 반 돈다. 약 30만km를 여행한다. 그런 속도로도 태양계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까지 가는데 5시간 30분 걸린다. 이쯤 되면 사람의 속력이나 소리의 속도는 고사하고 빛의 속도를 써야 한다.     그런 빛의 속도로도 우리 별인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데 4년 반이 걸린다. 이제는 빛의 속도로도 그 빠르기를 표현하기에 버거워진다. 우리 태양이 속한 은하를 특별히 은하수 은하라고 부른다. 은하수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약 4천억 개나 있는데 빛이 은하수를 가로질러 가는데 약 10만 년이 걸린다. 그리고 은하수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와는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두 은하를 건너가려면 빛의 속도로도 250만 년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빛의 속도도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우주에서 단 한 가지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빛의 속도다. 아인슈타인이 밝혀낸 사실이다.     관측 가능한 우리 우주의 지름이 약 930억 광년이라고 하니 빛이 930억 년을 가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영원이란 말로 귀결된다. 지구에 백 년 정도 사는 우리에게는 결국, 무한일 뿐이다.   참고로 속력은 영어로 speed라고 하며 그저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낼 때 사용하며 단위시간 당 움직인 거리를 말한다. 반면에 속도는 velocity라고 하며 물체의 빠르기 뿐만 아니라 그 방향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의 직선거리와 방향을 뜻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속도 자전 속도 은하수 은하 태양 주위

2023-02-24

[수필] 연약한 갈대, 강한 갈대

"시간·공간의 한계   인간의 사고 넘어서 오직 한번 뿐인 삶 근본적 문제 생각도"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생각하며 살아가고, 또 생각하고 연구함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 인간에겐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때(시대)와 장소(나라)와 혈연(부모, 인종)을 선택할 수가 없고, 또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지적능력(IQ,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자기가 이를 선택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조건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의 존재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가장 연약한 갈대가 될 수도 있고, 또는 가장 강한 갈대, 혹은 가장 위대한 갈대가 될 수도 있다.     무게가 400톤이 넘는 B-747 점보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시속 300km 이상이 되어야 한다. 또 미국의 유명한 인디 500(Indianapolis-500) 자동차 경주장에서 매년 5월 말에 4km(2.5mile)의 타원형 경기장을 200바퀴(500mile)나 도는 경기의 자동차 속도 또한 시속 300km나 되며, 그 속도를 느끼고 즐기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든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총알보다 30배나 빠른 시속 10만7460km의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왜 속도 감각이나 움직임을 전혀 못 느낄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의 이 공전 속도에 더하여, 지구 적도상의 자전 속도 또한 시속 1600Km나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쉽게 느끼며 보고 있는 시간과 공간, 또 보이지 않는 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나 그것의 한계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고, 그 기본적인 현상의 일부분만 겨우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빛의 속도로 10만 년을 가도 끝이 없는 이 우주는 너무도 광대무변하다.  인간의 ‘생각’에도 영역과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 결국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는 인간 사고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할 수 밖에는 없다.     또한 인간의 약점은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고, 또 오직 한 번 밖에 살 수가 없는 외줄타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조금의 여유를 일부러 만들어 내서라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도 좀 해 보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각하는 갈대”가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파스칼은 “논리적 합리성으로는 신(혹은 종교)의 존재를 거부하기에도 혹은 인정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다. 양쪽 모두가 상당한 합리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이성으로는 어느 쪽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 파스칼은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가?” 라고 도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건다면 비록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둘째, 그러나 우리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운명을 걸었는데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고 하였다.     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단순한 바보이지만,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범죄다.”라고 하였다(Those who don’t know the Truth are Dummies, but those who knows the Truth, and call it a lie are Criminals).     우리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 인간이 평생 고민하여야 할 문제가 이닐 수 없다.   이창수 / 수필가수필 갈대 자동차 속도 자전 속도 공전 속도

2022-07-07

[열린 광장]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낮의 길이가 많이 짧아졌다. 점심 대충 챙겨 먹고 서성대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문다. 이러다가는 신변잡사의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게 생겼다. 아일랜드 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비에 새겨 놓았다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의역된 내용이 마치 나 자신의 일처럼 다가와 쓴웃음을 짓는다.   지구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낸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위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 북위 37도를 기준할 때, 초속 350m(시속 1260km)이며, 공전 속도는 초속 30km(시속 10만6560km)라고 한다.     이 같은 속도로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365일이 걸리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지럼증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말해 준다.     한번 지나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강물이 어제의 강물이 아니듯, 내일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이 아니다. 한번 지나간 순간도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여기에 이 순간이 있을 뿐이다. 무한한 우주 안에서의 지극히 짧은 이 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언제인가 중앙일보에 실린 영어 단어 ‘Nowhere’에 관한 칼럼을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원래 no와 where의 합성어이지만, now와 here가 합쳐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지금 여기’로 풀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끝없는 우주 공간의 조그마한 행성에서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것도 현실 운명의 작용이며 자연의 섭리로 인식한다. 행복은 지금 여기 이 순간, 일상의 순환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행복의 시기를 장래의 목표 달성에 맞추다 보면 자칫 한 순간도 만족하지 못한 채 평생을 허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을 즐길 여유도 없이 주변과의 관계는 소홀해지고 스스로를 고립 상태에 가두어 놓기 쉽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족 및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유기적인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연대감을 통하여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한다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만남에 행복은 스며든다.       문호 톨스토이는 행복의 요체를 다음 세가지 물음에 대한 답으로 설명한다.     첫째,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지나간 과거도 아니고 불확실한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둘째,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여기에서 나와 같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셋째,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행복이 있다.     이 순간에 만족하련다. 지금 여기서 하는 일을 그대로 하다가, 때가오면 평화로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행복 자전 속도 공전 속도 우주 공간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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